Feb 2, 2015

말많은 SDN…“이상 말고 현실 보라“

성일용 시스코시스템즈코리아 부사장 인터뷰
황치규 기자/ delight@zdnet.co.kr 2015.01.30 / PM 02:12


올해 네트워크 시장 최고 관전 포인트 중 하나는 소프트웨어 정의 네트워킹(SDN)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SDN이 올해도 말찬지로 끌날 것이냐, 아니면 뭔가 변화를 수반하는 구호로 진화할 것이냐가 이슈다.

지난해까지 네트워크 시장은 SDN을 둘러싼 구호들이 난무했다. 초창기인 만큼, 관련 업체들은 네트워크 시장을 뒤흔들 대형 변수가 나타났다면서 분위기 조성을 위한 군불을 지피는데 초점을 맞췄다. 그럼에도 올해도 네트워크 판이 확 흔들릴 것 같지는 않다. SDN에 대한 기업들의 관심은 올해 더욱 늘겠지만 관심이 실제 프로젝트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네트워크 현장에서 뛰는 시스코시스템즈코리아 성일용 부사장도 SDN을 둘러싼 지나친 낙관론을 경계하는 쪽이다. 현실적인 접근을 강하게 주문한다.

"지금은 SDN을 이해하면서 파일럿 프로젝트를 시도해보는 회사들이 일부 나오고 있습니다. 올해는 SDN 실제 수요가 많이 나온다기 보다는 개념검증이나 파일럿 프로젝트 중심으로 흘러갈 거에요. 서버 가상화를 도입한 기업들이 네트워크와 스토리지 가상화에 관심을 가지면서 SDN에 접근하려는 시도들이 늘 것으로 보입니다. 시장에선 말이 안되는 얘기들도 많이 유통되는데, 이상과 현실에는 차이가 있어요. SDN을 받아들일 수 있는 시장의 준비는 아직 부족합니다."

SDN으로 네트워크 시장의 판이 갑자기 바뀔거란 기대는 접는게 좋다는 의미로 읽힌다. SDN은 개념만 놓고보면 대단히 파괴적인 기술이다. 말그대로 SW가 중심에 서는 네트워크 환경이다. 지금까지 네트워크 인프라는 한번 도입하면 환경을 바꾸기가 쉽지 않았다. 새로운 서비스를 위해 필요한 네트워크 인프라를 구비하는데도 시간이 오래 걸렸다. 아이디어가 나오면 서비스화가 바로 가능하도록 인프라가 바로 지원해줘야 하는데, 지금까지 네트워크 환경은 그러지 못했다. SDN에는 이걸 가능케 하는 개념이 담겼다. 특정 업체 하드웨어에 종속될 필요성도 줄어든다. 말만 무성한데도 시장이 들썩들썩 하는 이유다.

패러다임 변화를 뜻하는 만큼, SDN은 업체간 이해관계도 복잡하다. SDN을 구현하는 기술을 놓고 진영간 헤게모니 전쟁이 한창이다. 우선 오픈소스 기술인 오픈플로 기반 SDN 진영이 있다. 오픈플로는 네트워크 장비 업체, 구글과 같은 인터넷 서비스 업체들의 지원을 등에 업고 있다. 시스코도 오픈플로를 지원하지만 무게중심은 독자 개발한 SDN 기술에 두는 모습이다. 시스코의 SDN 전략은 애플리케이션중심인프라(ACI, Application Centric Infrastructure)로 요약된다. 시스코 하드웨어와 시스코 SW를 중심으로 SW중심의 네트워크 환경을 꾸리는 방식이다.

일각에선 시스코의 SDN 전략을 두고 폐쇄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SDN이 확산되면 그동안 쌓아놓은 하드웨어 장악력이 흔들릴 수 있는 만큼, ACI를 통해 자사 하드웨어 시장을 보호하려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성일용 부사장은 SDN을 왜 도입하는지 생각해 볼 것을 강조한다.

"고객의 IT환경이 많이 변했습니다. IT팀의 임무는 예전처럼 생산성 향상이 아닙니다. 빅데이터나 IoT를 활용해 새로운 서비스를 만드는 쪽으로 역할이 바뀌고 있어요. 아이디어가 나오면 인프라에서 바로 지원해줘야 합니다. 새로운 서비스를 얼마나 신속하게 개발할 수 있는 인프라를 갖추느냐가 IT팀의 핵심 업무가 됐어요. 시스코식으로 말하면 패스트IT입니다. 비즈니스 요구사항이 이렇게 바뀌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상이 아니라 실전에서 SDN의 개념을 제대로 구현해 줄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상적인 SDN 관점에서 보면 ACI는 폐쇄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실전에 투입했을 때 효과에서는 넘버원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셈이다. 성 부사장은 시장에 넘쳐나는 SDN 메시지에 대해 짚고 넘어가고 싶다는 표정이었지만 디테일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대신 시스코는 이미 ACI 레퍼런스도 확보했다는 점을 치켜세웠다. 공개할 수는 없지만 몇개 회사에서 ACI 기반으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라고 한다.

네트워크 가상화 개념이 담긴 SDN은 서버 가상화보다는 복잡한 기술이다. 대형 엔터프라이즈 기업이나 통신 사업자들 정도가 초기에 도입할만한 기업군으로 꼽힌다. 시스코 ACI를 쓰는 회사들도 이들 회사 중 하나일 것으로 보인다.

SDN은 네트워크 엔지니어들의 밥그릇과도 무관치 않다. SW의 역할이 커지면서 네트워크 엔지니어들도 파이썬이나 자바와 같은 프로그래밍 언어를 배우지 않으면 안되는 쪽으로 상황이 흘러가고 있다. 당장은 아닐지 몰라도 SDN 이론상 프로그래밍을 모르는 네트워크 엔지니어는 퇴출 대상이다. 성 부사장도 네트워크 엔지니어들이 가진 지식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엔지니어들도 이해 프로그래밍 언어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점은 공감했다. 직접 프로그래밍을 하지 않아도 개발과 업무 플로우를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은 갖춰야 한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