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수 KISTI(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슈퍼컴퓨팅본부장은 최근 중국發 뉴스를 보면서 본인도 어찌할 수 없는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중국이 미국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1초에 1000조회 이상 연산할 수 있는 페타플롭스급 슈퍼컴퓨터를 개발했다는 소식을 접해 듣고 '우리는 언제 우리의 슈퍼컴퓨터를 개발할 수 있을까'라는 다급한 마음이 들었다.
중국이 이번에 개발한 톈허1호(天河·은하수) 슈퍼컴퓨터는 최신형 듀얼프로세서 노트북 컴퓨터로 하루 24시간 쉬지 않고 160년간 할 수 있는 작업을 하루 만에 할 수 있는 성능을 가졌다. 세계에서 4번째로 강력한 성능이라고 자부한다.
톈허1호는 클러스터형 종류의 슈퍼컴퓨터다. 6144개 인텔 CPU와 5120개 AM DGPU를 사용, 103개 냉장고형 컴퓨터를 서로 연결해 구축한 시스템이다. 200명 연구진이 2년간 1000억원의 예산을 들여 개발해 냈다.
이 정도면 우리나라도 개발할 수 있지 않을까? 이지수 박사에 따르면 충분히 기술적으로 가능하다. 우리나라도 정부와 연구소가 마음만 먹는다면 기술확보 관점에서 시간과 돈을 투입해 충분히 이뤄낼 수 있는 개발 프로젝트다.
현재 KISTI가 보유한 클러스터형 슈퍼컴퓨터 실질 성능은 270테라플롭스급. 초당 563조1000억회(563테라플롭스) 연산 가능한 톈허1호의 절반 수준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현재 구축된 슈퍼컴퓨터는 외국 슈퍼컴퓨터를 그대로 도입, 교체한 것들이다. KISTI는 5년 마다 한번씩 외국으로부터 개선된 성능의 슈퍼컴퓨터를 교체한다. 올해 4번째 도입했으며, 총 비용이 6100만불 투입됐다. 아직까지는 우리나라 연구진들에 의해 직접 제작된 슈퍼컴퓨터는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우리나라도 토종 슈퍼컴퓨터를 개발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가 있었다. 슈퍼컴퓨터를 개발할 드림팀이 구성된 적도 있었다.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 시절이었다. 2003년부터 3~4년간 삼성전자와 슈퍼컴퓨터 개발 논의가 활발하게 펼쳐졌었다. 2005년에는 정부에 500~1000억원 예산규모의 클러스터 슈퍼컴퓨터 개발사업을 제안해 관련 사업이 본격 궤도에 오를 뻔한 적도 있다. 그러나 제안 과정에서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로 결국 과제는 성사되지 못했다.
그 이후 토종 슈퍼컴퓨터 개발에 희망을 걸 수 있는 상황이 부정적으로 번졌다. 삼성전자 서버사업부가 타 사업부로 이전됐고, 더 이상 슈퍼컴퓨터 사업은 추진하지 않기로 분위기가 변했다.
결국 토종 슈퍼컴 기술 확보의 문제는 시장성과 기업체 의지 여부로 귀결된다. 아무리 정부와 연구소가 의지가 있더라도 슈퍼컴퓨터 시장 공략을 기업측에서 하지 못한다면 개발에 대한 의미가 퇴색되기 때문이다. 슈퍼컴 개발이 가능한가 불가능한가의 문제와 세계 시장에서 시장성을 보고 제품을 팔아서 수익을 챙기는 문제는 전혀 다른 차원인 것이다.
그런 가운데 이 박사는 중국의 자체 슈퍼컴 개발에 대한 경각심이 크다. 지금은 우리의 2배 정도 앞서 있지만, 시간이 갈수록 우리나라와의 기술력 격차가 더 벌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가장 우려하고 있다.
중국은 지속적인 자체 기술 축적과 투자로 IT의 핵심중 하나인 슈퍼컴퓨터를 진화시키고 있는 반면, 한국은 정부와 연구소·산업체 모두 작금의 상황을 지켜만 보고 있을 뿐이다. 삼성같은 대기업이 슈퍼컴퓨터 시장에 도전해 연구소와 정부가 적극적으로 가담하는 날을 이지수 박사는 열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