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는 단 한번 `마음 통했느뇨?`
집단 프레젠테이션의 비법…10분 만에 100억 계약하기도
5년 전인 2002년 겨울 오후, 대전에 있는 하사관학교 강당은 난방이 안 된 탓에 싸늘한 냉기가 감돌았다. 하사관 후보생 700여 명이 냉기와 함께 앉아 있었다. 고된 훈련을 받았는지 지쳐 있었고, 많은 훈련생이 졸고 있었다. 무슨 말을 해도 들을 것 같지 않았다. 상황은 심각했다.
내가 그들 앞에 선 것은 종신보험을 판매하기 위해서였다. 지금은 익숙한 상품이지만 5년 전만 해도 생소한 개념이어서 대개 노트북을 들고 다녔다. 고객의 재정 상황을 파악해 평생 계획을 짜주는 복잡한 과정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말로 설명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게 중론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종신보험 계약자는 주로 30~40대였지만 내 눈앞에 있는 이들은 스물한두 살에 불과한, 보험의 ‘ㅂ’자도 생각하지 않았을 게 뻔한 젊은이들이었다.
더구나 주어진 시간은 딱 10분.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 서보는 것도 처음이었다. 그렇다고 물러날 수는 없는 일. 벼랑 끝에 몰리면 상식적인 방법으로는 안 된다. 혁명적인 방법이 필요했다. 어떻게 할까? 나는 군대 생활을 떠올렸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힘든 훈련으로 졸리실 텐데, 모두들 한번 일어나 볼까요?”
마이크를 잡고 큰 소리로 말하자 모두들 엉거주춤 일어났다. 그때 마이크에 대고 큰 소리로 외쳤다.
“어머니~, 어머니~.”
어수선했던 분위기가 일순 움찔했다.
“여러분도 한번 따라 해 보십시오. ‘어머니~.’”
한두 명이 따라 했다. 다시 “어머니~”를 외치자 수가 많아졌다. 다시 하자 모두들 따라 했다. ‘어머니’ 소리가 강당을 휘몰아쳤다. 눈물을 훔치는 훈련생들이 보였다. 그들을 앉게 한 뒤 눈을 감으라고 했다.
“여러분은 지금 부모님을 떠나 이곳에 와 있습니다. 여러분이 군인이다 보니 고향에 계신 부모님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을 겁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눈가에 손을 갖다 대는 이들이 점점 늘었다.
“눈을 뜨십시오. 자식이 다쳤는데 부모가 아무 손을 쓰지 못하는 것처럼 슬픈 일도 없습니다. 부모님을 안심시켜 드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떻게 효도해야 할까요?”
약속했던 10분이 끝났다. 700명 중 400명이 조금 넘는 훈련생이 ‘종신보험’ 계약서에 서명했다. 400명이면 100억원이 넘는 계약금이었다. 진실을 말하면 통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절감하는 순간이었다.
나는 보험 상품을 판매하는 ‘파이낸셜 플래너(financial planner)’다. 보험상품을 판매하는 다른 설계사들은 보통 일대일 영업을 한다. 하지만 나는 보통 20~30명을 대상으로 프레젠테이션을 한다. 내가 약속한 시간은 10분이다. 섭외할 때부터 아예 “10분만 달라”고 한다.
일반 프레젠테이션과도 다르다. 흔히 말하는 프레젠테이션의 주된 목적은 내용을 설명하고 상대를 설득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계약 체결이라는 결과물을 얻어야 한다. 파워포인트나 레이저 빔 같은 도구도 없다. 상황을 짧게 보고하는 ‘브리핑’과 비슷하다. 이런 모든 요소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나 스스로는 ‘통합 프레젠테이션’이라고 한다. 보험업계에는 없는 방식이다.
이렇게 9년 동안 8만 명이 넘는 고객을 만났고, 8000명을 고객으로 만들었다. 8만 명이면 하루 25명을 만나야 한다. 아무리 부지런한 영업사원도 일대일로는 이렇게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없다. 덕분에 세계 최고의 생명보험 전문가들로 구성된 MDRT(백만불 원탁회의) 회원이 될 수 있었다. 나는 고객을 만날 때 이런 방법을 쓴다.
기회는 단 한 번뿐이다
오늘도 고객을 만나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다.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담배 한 개비 물며 무거운 발걸음으로 사무실로 돌아왔다.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비즈니스에 몸담고 있는 사람의 숙명이다. 이럴 때는 긍정적이어야 한다. “다음번에는 잘 되겠지.”
이런 말을 믿는다고 상황이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나 또한 이렇게 스스로 위로했지만 아무것도 나아지는 것이 없었다. 그러다가 일본의 다도(茶道) 사상인 ‘일기일회(一期一會)를 접하게 되었다. ‘일생에 한 번만 만나는 인연’이라는 뜻이다. 사람을 만나면 후회가 없도록 잘 대해 주라는 교훈을 담고 있다.
그렇다. 비즈니스를 위한 만남에서는 다음번이란 없다. ‘다음번’이라는 말은 자신을 변명하게 만든다. 오늘의 잘못을 내일로 미루게 한다. 나는 머릿속에서 ‘다음번’을 지워 버렸다. “이번 만남이 마지막이다. 기회는 단 한 번뿐이다.” 머릿속에서 ‘다음번’을 지우자 나도 모르게 적극적이 되었다. 오늘이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다.
거절 잘 처리하는 게 포인트
비즈니스 세계에서 ‘을’은 거절 당하는 것이 일이다. 베테랑들은 거절을 많이 당하라고 한다. 거절이 쌓이면 계약이 나온다고도 말한다. 나는 조금 덜 거절당하는 방법을 연구했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거절이 나오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거절하는 패턴은 대개 비슷하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거절하는 이유를 10가지 정도로 요약하고 거절 사유마다 대처하는 10가지 화법을 만들었다.
열심히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있는데 “별다른 차이도 없네” 같은 빈정거림이 나오면 분위기가 확 바뀐다. 그럴 때는 대응하지 않는다. 대신 웃으면서 말한다. “맞습니다”는 말로 맞장구를 쳐준다. 그래야 더 이상 반발하지 않는다. 그런 다음 “조금 기다리시면 바로 얘기하겠다”고 말한다. “더 필요한 게 있으시면 개별적으로 찾아 뵙겠다”고 하면 누그러진다.
적절한 질문으로 ‘갑’이 된다
‘을’이 어려운 이유는 ‘갑’이 칼자루를 쥐고 있기 때문이다. 어려움을 해소하려면 ‘갑’이 되어야 한다. ‘갑’이 인정하는 ‘갑’이 되어야 한다. 해답은 적절한 질문에 있다. 절대 상대가 ‘노(No)’라는 대답을 하지 않게끔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상대의 고민과 필요를 먼저 심각하게 고민하고 해답을 찾아 그에 맞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저축을 하시면 이자가 붙죠? (네) 그러면 매년 똑같은 이자가 붙는 저축이 있고, 이자에 이자가 붙는 게 있습니다. 어떤 쪽이 좋을까요? (후자가 좋지요) 그러면, 세금을 떼는 게 좋을까요, 아니면 안 떼는 게 좋을까요? (안 떼는 게 좋죠)”
일반인이 어렵게 느끼는 ‘복리’‘비과세’를 질문 몇 개로 통과했다. 이렇게 되면 ‘갑’이 바뀐다. “자, 여기에 매달 생활비가 나온다면 어떻습니까? (좋죠)” 이건 연금 이야기다. 예스, 예스 하다 보면 계약까지 일사천리다. 나는 이런 ‘원스텝 질문’으로 보험회사에서 보험상품을 판 적도 있다.
짧고 살아있는 표현을 써라
어느 날 수산시장에 갔을 때 한 생선가게 주인이 내 팔을 끌어당겼다. 그러면서 “아저씨! 광어가 눈을 부라리고 있는 거 안 보여요? 와서 한 번만 봐. 안 보고 가면 광어가 울어”라고 했다. 결국 웃으면서 살 수밖에 없었다. 사실 옆집과 별 차이도 없는데 말이다.
나는 이런 경험을 일에 접목시켰다. “이런 상품이 더 좋다”가 아닌, “돈은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하죠? (네) 그러면 수익률이 높고 안전한 상품이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그걸 선택하겠죠)”라고 하는 것이다.
결국 마음 비즈니스다
어느 날 한 중소기업 사장님을 찾아갔는데 그날따라 안색이 어두웠다. 들어보니 모친이 신장암으로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나는 모든 일정을 파기한 후 사장님께 제안했다. “맥주 한잔 하러 가시죠. 제가 사겠습니다.” 그 사장님은 한참을 울고 나서 어렵게 살았던 얘기를 했다.
다음날 아침 그 사장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계약하자는 것이다. “아직 설명도 안 했는데요”라고 했더니 “여러 세일즈맨들에게 들어 이미 다 알고 있다”면서 “나는 당신을 사는 것이오”라고 말했다. 그리고 한 마디 더 했다. “마음으로 같이 울 수 있는 당신이면 된다.”
비즈니스는 ‘고도의 심리게임’이다. 나는 상대를 설득시키려 하고, 상대는 나에게 설득당하지 않으려는 심리가 있다. 하지만 상대의 마음을 바꾸려고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그 사람의 가치관과 경험을 부정하는 일이다. 움직여야 할 것은 상대의 심리다.
하사관 훈련생들에게 했던 것처럼 상대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내가 먼저 대신 이야기 해주는 것이 포인트다. 거절할 만한 이유도 먼저 말한다. 자신이 하고 싶었던 말을 대신 해주기 때문에 ‘맞다’고 생각한다. ‘맞다’는 ‘옳다’로 이어진다. 동질감을 느끼면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진실해야 한다는 점이다.
임한기 이너LDC 대표(topbbli@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