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l 23, 2007

공부도 밥 먹듯 습관 들이도록 도와주세요


과외 없이 6남매 수재로 키운 김종선씨

"부모는 멍석만 깔아주고 재주는 아이가 부리게 해야 합니다. 그 재주를 썩히지 않게 하는 게 엄마의 몫이고요."
"공부는 한 번에 끝나는 100m 달리기가 아니라 마라톤이라고 생각해요. 재미가 있으면 공부는 지치지 않고 스스로 하게 됩니다."
"무조건 학원 '순례'를 시키는 것은 '낙락장송(落落長松)'으로 자라야 할 아이를 '분재(盆栽)'로 키우는 꼴임을 주변에서 종종 보게 돼요."
6남매를 수재로 길렀다는 얘길 듣고 서울 방배동의 연립주택 자택으로 찾아가 만난 김종선(59)씨는 평범한 엄마의 모습이었다.

해묵은 백과사전과 책들이 빼곡한 책장이 놓인 거실에서 그가 풀어놓은 자녀 교육에 대한 생각도 여느 엄마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김씨의 말에서는 그냥 넘겨버릴 수 없는 무게감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여섯 자녀를 모두 '공부 잘하는 아이들'로 길러낸 경험에서 우러나온 말이기 때문이리라.

김씨는 첫째 현경(31)이를 서울대 의대(의사), 둘째 희경(30)이를 서울대 법대(변호사), 셋째 보경(27)이를 서울대 약대(약사),넷째 은경(27)이를 한양대 수학과(교사 임용고사 준비 중), 다섯째 미경(25)이를 연세대 의대(2월 졸업 예정)에 보냈다. 딸 다섯에 이어 난 막내아들 형석(경문고2)이도 늘 전교 10등 이내 성적을 유지한다.

"남들은 '엄마가 애들을 어지간히 잡았겠지' 하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부모가 시킨다고 공부를 잘하겠어요. 다 저네들이 열심히 한 거지요." 김씨는 공을 자녀들에게 돌렸지만 그래도 뭔가 '비법'이 있을 듯했다. 자녀 교육에 대한 김씨의 경험과 생각을 들어봤다. 그는 얼마 전 자녀교육 경험담을 담은'방배동 김선생의 공부가 희망이다(이다미디어)'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

# 공부는 습관이다

김씨는 공부도 밥 먹듯이 몸에 익어야 하고, 맛있게 해야 효과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공부습관을 길러주는 게 중요하다고 여긴다. "6~7세가 될 때까지 가장 기본적인 습관을 들여주고 초등학교 3학년이 될 때까지 공부하는 습관을 잘 들여주면 나머진 아이들의 몫이고, 아이들의 노력에 달려 있다고 봐요."

그러면 김씨는 아이들의 공부 습관을 어떻게 들여줬을까. "숙제를 철저히 하는 게 스스로 공부하는 습관을 길러주는 훈련이라고 생각했어요. 아이들이 학교에 다녀오면 숙제부터 끝내고 놀든가 다른 일을 하도록 했지요. 평소 아이들의 행동과 말에 눈과 귀를 열어두고 아이가 호기심을 보이면 즉각 반응을 했어요. 궁금하거나 모르는 걸 물어보면 열 일 제치고 도와줬어요. 물론 답은 안 알려주고 푸는 방법을 얘기해줬습니다. 길을 가다가 아이가 물어보는 것을 잘 몰랐을 땐 집에 돌아와 백과사전을 들춰가며 같이 알아보곤 했지요."

# 스스로 하게 해라

김씨는 학교 숙제든 뭐든 '스스로 하기'를 원칙으로 삼았다고 한다. "엄마가 숙제를 대신 해주는 것은 아이를 '퇴보'시키는 일이지요. 학교 준비물 챙기기도 마찬가지고요. 성적이 다소 부족해도 처음부터 자기 스스로 하게 해야 발전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아이들의 선택이나 의견을 존중하고 수용하는 편이었다고 한다. 아이들이 공부 목표도 스스로 정하게 했다. 다섯 딸의 대학 전공도 모두 자녀 스스로 결정한 것이라고 한다. "스스로 선택할 수 있어야 인내심도 길러지고 스스로 노력하게 됩니다." 김씨는 부모가 아이에게 너무 욕심을 내지 말라는 말도 했다. "아이에게 공부를 무리하게 강요하면 아이들이 더 부담을 느끼고, 공부가 안 될 수도 있어요. 스스로 하도록 유도하는 게 중요해요."

# 독서는 모든 공부의 시작

김씨는 아이들이 유아일 때부터 책과 친해지도록 신경을 썼다. 독서가 공부의 시작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책 많이 읽으면 좋다는 건 엄마들이 다 알지요. 문제는 아이가 책을 좋아하게 하는 방법입니다. 우선 책을 장난감처럼 부담없이 갖고 놀게 했어요. 그림책을 읽어줄 때도 책에 있는 글을 읽어주기보다는 그림을 보면서 즉석 이야기를 꾸며 아이와 대화를 하는 식으로 했어요. 아이가 더 흥미있어 했지요."

김씨는 무엇보다도 엄마 스스로 책 읽는 모습을 보여준 게 아이들의 독서 습관을 이끌어낸 것 같다고 했다. "엄마가 먼저 밤새 책을 읽으면 아이들이 궁금해 하면서 따라 읽곤 했지요. 박경리의 토지라든가 목민심서 같은 초등학생에겐 어려운 책도 곧잘 따라 읽었어요."

# 학원이 만능은 아니다

김씨는 아이들을 기르면서 반찬 장사와 보리빵 장사를 하기도 했다. 넉넉지 못한 살림 형편 때문이었다. 그래서이기도 했지만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 본 적이 별로 없다. 큰딸과 막내아들이 고교 입학을 전후해 부족한 과목을 보충한다는 이유로 3개월 정도 다니다 그만둔 게 전부다. 모두 아이들이 "이제 필요 없다"고 해서였다.

"학원이나 과외는 아이의 특성이나 상황에 따라 필요한 경우에만 시키면 될 듯합니다. 무조건 학원에 보내는 게 능사는 아니지요. 학원을 몇 개씩 보내면서 '학원 구경'만 시키는 꼴이 되어서는 아이들 공부에 오히려 도움이 안 된다고 봐요."

김씨는 '돈이 좀 없어도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고 한다. '요즘 세상에 무슨 소리냐'는 소릴 들을 수도 있겠지만 꼭 그 말을 하고 싶단다. "공부도, 인생도 마라톤입니다. 형편이 안 되더라도 엄마가 지레 포기하거나 휘둘리지 말아야 해요. 아이가 사회에서 자기 몫을 하면서 살도록 격려하면서 키워야 한다고 믿어요. 아이 능력에 맞게 공부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려는 노력, 그게 엄마의 몫인 것 같습니다."


글=김남중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